퍼 온 시
안개 속에서/이향아
녀름비
2020. 3. 14. 02:03
안개 속에서/ 이향아
바람이 불자
안개가 실크스카프처럼 밀린다
밀리고 흘러서 걷힐지라도
도시의 뒷골목 넘치는 하수구와
한 길 사람 속과
오래 가지 못할 거짓말과
무던한 안개가 품고 있던 것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개와 친해져서
사거리 터진 마당의 애매한 취기
불확실한 경계
용서할 수 있는 미결의
꿈속 같은 그늘이 불편하지 않다
안개 걷혀도 미지수의 괄호들은 남을 것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차라리 자욱할 때 평안들 하신지
어슴푸레 열릴 듯한 은은한 천지.
-이향아 시집 『안개 속에서』(시문학사, 2017)에서
가시거리와 용감함은 비례한다.
어둠은 자신을 감출 수 있어 도덕이나 양심 심지어 법에서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착하신 분들은 화를 가라앉히시라.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어둠이 나를 엄폐시켜주기 때문에 술한잔 걸치고 비틀걸음을 해도 부끄럽지 않고 담배 꽁초도 아무데나 던져도 라고 사진찍힐 일도 없으며 골목길에 접어 들어 남의 담벼락에 소변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 용감해진다. 반면 밝은 날이면 남의 이목도 있고 또 요즘 같으면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이 거의 없기에 여러 모로 언행에 조심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 안개가 끼어 반어둠같은 날은 어떠냐고 묻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