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 온 시
흔들리는 계절/고은영
녀름비
2019. 9. 14. 11:07
흔들리는 계절 / (宵火)고은영
한때 견딜 수 없이 범람하던
욕망이 찌끼도 한풀 꺾인 풍경은
어젯밤 사무치게 울었던 빗소리에 흔들려
그 메시지가 한층 검푸르게 깊어만 간다
별 이유도 없이
깊은 물길로 순장돼 가는 연정이여
이제야말로 너는 서글픈 영혼의 떨림으로
세월의 풍상에 삭아 남루하지만
고요한 침묵의 서러움으로
그리움에 짓물러 사랑을 소환해도
사랑은 도돌이가 되지 못한다
산 위엔 뭉게구름 파노라마
늙어가는 계절 위에 앉아
바람의 악보 속에서
나는 가을을 읽고 있다
삶의 어두운색과 밝은색의 시적 진실들을
아들네를 보내고
헬멧티드 거북이와 두 수족관의 물을 갈아 주느라 아침 반나절을 보냈다.
헬멧 이놈들은 찬물로 갈아줘서 불만인지 안방에 들어와 앉았는데도 바닥 돌들을 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쌈닭 시클리트를 피해 체리새우 방으로 구피와 네온플레티를 옮겨놓으니 자기들만 남겨진 게 좀 수상한지
'쌈닭'들이 여과기 밑과 개운죽 뒤에서 머리만 내밀고 눈치를 살핀다. 새 종들이 배송되면 헬멧 방에 '쌈닭'을
던져 합방시키고 말 것이다.
흔들리는 게 어디 계절 탓이랴.
빨리 늙어 더 흔들리지 않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