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백수는 결코 외롭지 않다
녀름비
2008. 8. 6.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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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가지고 이러저리 돌려
보다 곧장 떨어져 잠이 들었다가 몸을 사리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 때문에 눈이 떠졌다.
백수란 잠이 오면 아무 때라도 잠을 실컷 잘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강점이 아니겠는가.
2
벌써 여름은 파장이다.
인적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연밭은 화장이 흐트러진
늙은 여자의 슬픈 모습이다.
잠자리 한가로이 날고 찢겨진 연잎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피었을 연꽃과 꺼멓게 익어가는 연밥에서 벌써 저만치
와 있는 가을을 본다.
3
세월의 흐름은 마치 자란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을 동시에
지닌 거역할 수 없는 역설의 양면 칼이다.
얼른 키가 크고 싶은 소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즐거운 일이겠지만 늘어 가는 백발과 처져 가는 목주름을
매일 거울로 봐야 하는 나에게는 전혀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4
하는 일도 변변히 없는 백수라 할지라도 세월 가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백수라는 직업이 외로움을 느낄 만큼 한가롭지가
않아서 일까? 이상하게도 난 외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그래, 난 사람도 아니다.
2008. 08. 06. -낮잠 자고 일어나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