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에 담기

순천만 갈대와 여수 오동도

녀름비 2007. 8. 8. 13:35

 

 

 

 

 

 

 

 

 

 

 

 

 

 

 

 

      떠나기 전 일기예보를 검색해 보니 국지성 호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순천만 갈대가 보고 싶었다.

      꼭 한번 만나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나 버렸고

      보아 주는 이 없이 밤이면 꺼이꺼이 낮은 소리로 울고 있을 옛 연인같아

      도저히 이번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나 강적 호랭이가 만류했다.

      "비도 오는데 뭐하러 그런 곳에 가?"

      "가랑비만 조금 온대"

      뻥쳤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이윽고 갈대를 찍는 동안 장대비로 변했다.

      부랴부랴 차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미 옷은 다 젖어 버렸다.

      화가 난 호랭이는 아들의 머리를 닦아주면서도 흰자위를 번뜩여 자신의 살기가

      평상 시의 수준이나 일시적이 아닌, 부단히 축적되어 온 것임을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여수에 가서 맛있는 것 사준다고 다독였지만 소용없다.

      "시원한데 왜 그래 엄마?"

      엠피쓰리를 귀에 꽂으며 아들이 말했다.

      호랭이는 아들 봐서 참는다고 인심을 썼다.

      '덴장, 넌 애들밖에 모르냐?' 

       

      여수 오동도의 분수는 비가 와도 잘 작동하고 있었다.

      엑소더스 음악에 분수가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옆 다른 분수에서는

      수증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젊은 애들이 분수에 손이나 발을 대면서 장난을 친다.

      '역시 젊음은 존 것이여~'

       

      들어 갈 때는 저렇게 조신하게 걸어 갔는데

      나올 때 제방에서 또 다시 천둥을 동반한 비를 만났다.

      이건 내리는 게 아니라 쏟아 붓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자 겁먹은 사람들 몇이서 벼락을 피한다고 제방 옆

      화분대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앞서 가던 호랭이도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쪼그리고 앉는다.

      '크하하하하' 

       

      차 안으로 들어와 대충 닦고 난 아들이 휴대 전화를 보고 하는 말

      "아빠! 지금 여수 지방에 호우 경보가 내렸다네요"

      호랭이 눈이 또다시 찢어진다. 

      "뭐, 가랑비만 온다고?"

       

      난 오늘 죽었다. 

       

                                                        2007. 08. 08.    여름비

       

                                                                                         음악은 휘지님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