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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기212

은파저수지의 봄 함께 내려온 딸이 은파저수지 가고싶다고 하여 잠시 걸어보다. 전날 내린 비에 낙화조각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공중에도 땅에도 온통 꽃천지다. 20일 가까이 근무하는 틈틈이 보호자로서 기쁨조까지 겸업한 딸이 있어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되다. 마지막 사진은 한 열흘 묵었던 곳인데 유달리 벚꽃이 앞에 있어 매일 보고 살았다. 2021. 4. 6.
내소사의 전나무 길 주말이 되어 내려온 딸과 호랭이를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내소사를 다녀오다. 가족으로 연인으로 이루어진 상춘객들이 조용히 전나무 숲길을 걸어서 천년 고목이 마당에 우뚝한 경내를 거닌다. 흑매는 지는 중인데 백목련은 이제 한창이다. 모양을 잘 잡은 산수유 앞에 사진찍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을 손자들이 휠체어에 모시고 깔깔거린다. 나서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 자연이라면 똑같이 누리를 혜택인데 어떤 것은 하루를 살다가고 어떤 것을 천 년을 누리기도 한다. 하루든 천 년이든 후회없는 삶을 누렸으면 만족한 생이리라. 오후 바람이 차가웠다. 2021. 3. 25.
군산 오성산의 봄 아내와 오성산에 오른 날 마침 패러글라이딩 동호팀이 봄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손님을 태우는 팀과 현장 보조요원 그리고 다시 팀원을 회수해 오는 픽업팀. 이렇게 분담해서 즐겁게 봄 속을 날고 있었다. 안전요원인 듯 싶다. 출발할 때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과 날고 있는 팀과 끊임없이 큰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손님이 카메라를 들고 앞에 타고 운전자가 뒤에 자리한다. 패러글라이딩 색깔도 유난히 고운 봄날이다. 2021. 3. 20.
군산 하제 가는 길 으악새/강영은 아아,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흑꼬리도요,알락 꼬리마도요 같은,울음 끝이 긴 새 이름인 줄만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유목의 가을, 능선의 목울대를 조율하는 새를 보았다 生에 더 오를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농약 탄 막걸리를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는 작은 외삼촌, 한라산 중턱 에 무덤 한 채 세운 그를 만나러 앞 오름 지나던 그날, 차창 너머 햇빛에 머리 푼 으악새, 출렁이는 몸짓이 뼈 만 남은 삼촌의 손가락 같았다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삼촌의 아흐, 희고 흰 손가락, 그날 이후 손가락만 남아 손 가락이 입이 된 새를 사랑하게.. 2020. 10. 18.
부여 궁남지에서 궁남지에는 가을 속에 아직 여름이 조금 남아 있다. 한가위 휴가 속에 가족끼리 연인끼리 혹은 유모차를 밀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달랑 혼자서 느긋하게 상념에 젖어 걷기도 한다. 흔들의자에 앉은이는 조금 차가워진 분수에 바짝 팔짱을 끼고 시든 연잎과 마지막 남은 국적 모를 연꽃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네 타던 소녀의 웃음 소리에 웃옷을 벗는 아빠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을에 와야만 봄여름이 짧았음을 비로소 안다. 가을 징검다리에서 내가 지금 어디 쯤을 건너고 있음도 안다. 이 가을이 조금이나마 길었으면 좋겠다. 2020. 10. 10.
불갑사 꽃무릇 5~6세 쯤해서 우리 읍내에도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제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늦은 밤에는 석유내 나는 등잔불이나 마지막 빨간 불빛을 보이며 사라지던 촛불에서 상당 기간 벗어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아홉시 쯤이었을까? 그때가 전기 공급이 끊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시각이 되면 윗방 아랫방에서 생활하던 우리 형제 자매들은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모두 자리에 누워야 했다. 그리고 투명 유리의 백열등이 스르르 꺼지는 그 순간을 누가 정확히 맞히는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이윽고 전기가 끊기고 눈 앞이 캄캄해지면 누가 제일 정확했는지를 가지고 한바탕 웃으면서 잠에 수렁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당시는 전류가 한 순간에 들어오거나 끊기지 않고 약 2~3초 정도의 시간을 두고 서서히 .. 2020. 9. 30.
완주 대아저수지의 4월 사진은 전북 완주 대아저수지 타인의 나날 최형심 달팽이는 말한다. 새와 나무 사이에 걸린 문장이 헐거워지면 당신을 잊어도 될까. 달팽이는 말한다. 왜 날짜 지난 신문 가까이 앉으면 배가 고플까. 달팽이는 말한다. 두 개의 모자를 쓰면 꽃이 될 수 있을까. 너는 말한다. 사라진 발과 사.. 2020. 4. 18.
군산 해망동 새벽 풍경 실뱀장어 잡이 배들을 담으러 새벽길에 갔는데 안개가 끼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비오리와 아침부터 한 성깔하는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등등과 동백대교 건너편 장항 풍경이 안개 위로 보인다. 겨울같은 봄이 쉽게 지나갈 것 같지 않다. 2020. 4. 4.
꽃 피는 고창 선운사 선운사에서/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2020. 3. 21.
논산 탑정호의 왕버들 호수의 물이 가득하다. 왕버들 아래로 솎아 잘라낸 왕버들이 쌓여있다. 베어냈으면 거둬들여 땔감이나 거름으로 사용하도록 한다면 좋으련만 저렇게 놔두면 수질이 나빠질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 아닌가. 기분만 나빠져 돌아가기는 싫은데.... 2020. 3. 21.
서천 월하성의 쌍도 서천 서면 동백정 앞에 있는 오력도 비인면 선도리 앞 쌍도 할미섬 섬들이 놀다 / 장대송 빈 벽에서 먼 바다의 섬들을 보았다 섬들이 놀고 있다 우울했다가 심심했다가 깔깔대다가 눈물 흘리다가 사는 게 노는 것이라고 했다 집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가 상여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 2020. 3. 18.
서천 봉선저수지 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생명들 국립국어원에서 팬데믹(pandemic)이란 용어를 '세계적 유행'으로 코호트격리를 '동일집단격리'로 스윙보터를 '유동투표층' 등.. 2020. 3. 17.
금강하구의 갯벌 영역 표시 곰은 굵직한 나무에 몸을 최대한 세워서 앞발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발톱 자국을 남긴다. 호랑이는 엉덩이를 뒤로 돌려 꼬리를 쳐들고 벽에다가 오줌을 사정없이 분사해 놓는다. 앞발도 없고 세울 수 있는 꼬리도 없는 바다는 자신의 영역을 비울 때마다 갯벌에 서각.. 2020. 3. 10.
봄이 왔는데 봄같지가 않아요. 온 세상이 코로나로 얼어 붙었다. 불어나는 확진자수와 무른 제방 터지듯 사방에서 발병하고 있는 상황을 보도하는 뉴스를 접하며 이 지경까지 만들고도 발뺌에 급급한 몰지각한 집단의 행태에 분노가 솟는다. 다구나 힘을 합쳐도 모자란데 이때다 하고 발병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집단.. 2020. 3. 7.
지리산 산동 산수유마을에서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2020.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