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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 하나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이 죽기 20일 전에 쓴 마지막 작품 ㅡㅡㅡㅡㅡㅡㅡ 풀은 풀이어야 한다. 뿌리까지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서 웃는 항상 바람에 맞서는 풀이 진정 풀답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수영은 문인들 사이에서 지독한 노랭이라고 했다. 다른 문인들과 달리 원고료를 받으면 관례처럼 술이나 밥을 동료들에 사지 않고.. 2021. 11. 22.
내가 나에게 보내는 안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안부 신새벽 지구의 숨소리마저 빈 접시처럼 고요해지는 오후 알전구 무료하게 흔들리는 나른한 카페 커피 잔을 잡은 손을 물끄러미 헐렁해진 살갗에 내려앉은 검은 점들 이젠 얕은 물웅덩이에 걸려 넘어지는 허술한 몸뚱이가 되었다. 안아 주기도, 매만져 주기도 안쓰러운 검은 봉투에 담겨 있는 붉은 원피스는 누굴 위해 샀는지 슬픔이 함께 구겨져 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흐려지고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점점 어두워지는 고양이 눈으로 밝힌 등대 빛처럼 지척에서도 가늠할 수 없다 어디에나 기대고 싶고 아무 곳이나 밀착하고 싶은 오후 왼손을 오른손이 가만히 쓰다듬는 시간 http://blog.yes24.com/document/15419042 2021. 11. 21.
칠갑산 장곡사의 가을 칠갑산 장곡사의 가을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주병선이 노래로 불러 유명한 칠갑산. 그곳에는 신라 때 창건한 장곡사가 있다. 설선당의 보수공사장이 비에 젖고 인적은 그쳤는데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스님 한 분이 비를 맞으며 바쁜 걸음을 내딛는다. 경사가 상당한 곳에 자리한 장곡사는 그것 때문인지 대웅전이 두 개다. 위쪽에 있는 상대웅전이고 아래쪽이 하대웅전. 이곳 상대웅전은 사각 벽돌로 바닥이 돼 있다는 독특함으로 이름이 나 있다. 기와색과 같은 검은 회색 바탕에 연꽃 무늬를 새겼는데 와당 무늬보다 좀더 정교하게 되어 있다. 냉기 때문에 신도들이 불편할까 봐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촬영을 금하라는 경고문 때문에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민박집 지붕 위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2021. 11. 17.
부여 국화 축제 비는 며칠째 내려 땅은 질척이고 방문객은 적고. 행사 준비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와 보답으로 게시함. 구드레 선착장에서 2021. 11. 17.
모감주나무/김성희 김시인의 모감주나무 시를 읽는데 모감주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아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면서 한나절을 보내고서야 겨우 오식도 공단공원을 떠올렸다. 공원을 온통이다시피 전경을 노랗게 물들인 주인공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찰나에 일찍 떨어진 무른 감을 물컥 밟으면서 섞어 심은 감나무의 낙과에 신경이 쓰여 검색하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몇 년 전이 겨우 떠올랐다. 이어서 입구쪽에 주차해 놓은 트럭 창문에 기대어 잠든 중년의 운전수가 떠올랐고 예초기로 잡초를 제거하던 젊은 인부가 땀을 훔치던 하얀 수건도 연달아 떠올랐다. 바랜 페인트 색깔에 검은 곰팡이가 잔뜩 엉겨붙은 벤치는 오직 공원이라는 명칭을 갖다 붙이기 위한 장식에 불과했던 여름날이었다. 오래된 사람 떠올리는 것도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 2021. 8. 30.
정해지지 않은 세상 계란 반숙 1개 감자 반쪽 두부 반에 반에 반 모 곰탕국에 공기밥 두어 술 바나나 반 개와 견과류 몇 개 섞은 야쿠르트 야채쥬스 반 컵 아침 식단이다. 가끔 이 순서를 어기고 두부를 손대기 전 입맛에 좋은 야쿠르트를 먹으면 왜 순서를 지키지 않느냐고 아내는 성화다 어차피 똑 같은 곳으로 가는데 순서가 무어냐고 대들면 책에서 전문가가 정한 순서란다 세상에 정해진 것이 얼마나 되는가 걷기 시작할 때 왼발이 먼저인가 오른발이 먼저인가 산에 올라 경관을 바라볼 때 왼쪽부터 보나 오른쪽부터 보나.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또 어떻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 세상 일이 아닐까. 얼마 전 장항선을 잠시 탔다. 비 내리는 장항선이다. 2021. 7. 5.
곡성 도림사 곡성 기차마을에 갔다. 이미 장미는 반쯤 진 상태 장미원 구경을 마치고 도림사에 들러 시원한 계곡을 둘러 보다. 2021. 6. 6.
어떤 타투 태평양을 건너와 꿈의 나라에서도 꿈은 꿀 수 없었습니다 신대륙의 판타지도 잠시 벅찼던 희망은 책갈피 갈피에 꽂아 두고 2세들이 딛고 갈 디딤돌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 돌이 단단해지는데 한 세대가 다 가고 사랑하는 여자도 갔습니다 머리칼에는 서리가 무성합니다 여자를 보내고 홀로 남겨진 남자는 가슴에다 그녀의 얼굴을 새겼습니다 한 땀 한 땀 뜨는 바늘에는 아메리칸드림이 얼룩진 땀내가 차별의 눈물이 뜨겁게 스며들었습니다 방금 건너온 길모퉁이에 바람 불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여자는 동백꽃처럼 살아나 함께 웃고 울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를 보내고 스무 해가 더 갔지만 일흔의 남자는 형벌처럼 그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섬처럼 별처럼 오래 묵힌 꿈처럼 그가 지켜낸 슬픈 약속에 가을 한날 잠들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2021. 6. 6.
김제 금산사 18일이 부처님 오신날이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날을 피해서 금산사를 다녀왔다.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은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 체력을 연마(?)하던 곳이다. 그 당시는 입장료가 같은 것도 없으니 아무 때나 뛰어 올라갔다 또 뛰어내려오는 것으로 운동을 삼았다. 왕복 한 시간이면 넉근했는데..... 다 지나간 일이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하여 우산을 준비했으나 쓸 일은 없었다. 초파일에 대비해 연등을 준비를 하느라 사방으로 줄을 늘여 쳐놓아 사진찍기에는방해가 되었다. 불공을 드리는 신자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조용히 둘러보고 내려왔다. 바로 아래 금평저수지가 있고 그 제방 아래 민물고기 매운탕집들이 두어집 있는데 호*산장이라는 곳에서 새우탕으로 점심을 채우다. 2021. 5. 18.
함평 엑스포 공원 그래서 늦는 것들/류미야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 혹은 한자리에서 잊히기나 하는지요 날리는 저 꽃잎들 다 겨울의 유서인데요 그런 어떤 소멸만이 꽃을 피우나 봐요 사랑을 완성하는 것 물그림자에 비친 언제나 한발 늦고 마는 깨진 마음이듯이 철들고 물드는 건 아파 아름다워요 울음에서 울음으로 서로 젖는 매미들 제 몸을 벗은 날개로 영원 속으로 날아가요 폐허가 축조하는 눈부신 빛의 궁전 눈물에서 열매로 그늘에서 무늬로 계절이 깊어갈수록 훨훨 가벼워지네요 ㅡ시집『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 도착하는지』(서울셀렉션, 2021) 2021. 5. 12.
푸성가리를 심다 다섯 그루 서 있는 소나무오른 쪽이 취나물 보고다. 그 뒤로 매실 감나무 등등이 보이고 그 뒤로 숲 중간중간에 작년에 친구가 준 취나물을 심어 놨는데 올 봄에 살펴보니 10퍼센트 정도 살아 난 듯하다. 그 아래쪽에 올봄에 무화과와 사과좀 심으려 했는데 한 달 남짓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시기를 놓쳤다. 이 만큼만 농사 짓기로 했다. 빈 공간은 생각나는 대로 호박이나 참외를 심어 볼까 한다.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관리기도 없으니 쇠스랑으로 파서 만든 고랑에 비닐을 덮었다. 참 이래가지고 제대로 자라기나 할려나. 옥수수 호박 참외 가지 오이 모종이 배달 왔다. 마침 비가 쬐금 내렸는데 어림도 없어 조롱으로 물을 퍼다 주었다. 아랫집 텃밭이다. 농사 연륜의 차이가 엄청나다. 존경스럽다. 쉬는 동안 친구가 필요.. 2021. 5. 12.
고창 유채꽃과 청보리밭 한 열흘 넘게 애비와 함께 생활했던 딸이 주말마다 궁금하다고 내려온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를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은 나는 구시대 사고 방식을 지녔을까? 어느 해인가는 청보리밭을 보러가다가 차량들이 밀려 기다리다 못해 중간에 차를 돌려나오기도 할만큼 북적거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한가해진 요즘의 풍경이 마냥 즐겁지만은 아니하다. 언제 이 험난한 시절의 종지부가 찍힐지..... 만나지 못하여 멀어진 사람들의 거리가 코로나가 물러간 뒤에도 과연 전과같이 회복이 될지 그것 또한 모를 일이다. 2021. 4. 21.
전주 도로공사 수목원의 봄꽃들 전주 호남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근처에 있는 도로공사수목원은 집 가까이 있어 가끔 방문하는 곳이다. 평소 보기도 어려운 꽃들이 그곳에 가면 있다는 게 반가운 일이고 더욱더 자주 찾는 것은 붐비지 않는 관람객들의 느긋한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며 다음으로는 가파른 경사가 없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곳이다. 보행로 안쪽 조금 먼곳에 있는 꽃이 예뻐 밧줄로 경계를 지어놓은 곳을 넘어가고 싶었지만 참기가 힘들다. 보는 사람이 없다지만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지 않은가. 일주일도 더 지난 사진이라서 지금쯤 시들어가는 꽃도 있으리라. 이렇게 봄날의 하루가 간다. 2021. 4. 20.
익산 웅포의 봄길 폐허가 된 벽돌공장이 있었다. 한쪽이 무너진 가마터와 아직도 넉근하게 서 있는 굴뚝 그리고 널려진 벽돌 조각들이 이곳이 벽돌공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가끔 고독의 반추놀이를 하기에 딱이어서 찾다가 보니 어느새 좋아진 폐허였다. 어느 날부턴가 중장비들이 공장을 에워싸고 있는 산을 밀어 폐허가 된 가마터며 커다란 굴뚝까지도 모조리 황토 속에 묻어버리는 게 아닌가. 반추터를 잃고나서 한동안 그곳을 찾지 않고 지내다가 그리운 마음에 찾아가 보니 널널한 골프장이 번듯하게 들어서 있었다. 익산 베어리버 골프장. 오늘은 이미 지기 시작한 골프장 근처 벚꽃길을 걸었다. 2021. 4. 10.
은파저수지의 봄 함께 내려온 딸이 은파저수지 가고싶다고 하여 잠시 걸어보다. 전날 내린 비에 낙화조각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공중에도 땅에도 온통 꽃천지다. 20일 가까이 근무하는 틈틈이 보호자로서 기쁨조까지 겸업한 딸이 있어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되다. 마지막 사진은 한 열흘 묵었던 곳인데 유달리 벚꽃이 앞에 있어 매일 보고 살았다. 2021.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