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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강변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서니 하구언 수문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직 여름의 뒷 모습이 멀지 않기에 물도 맑은 편이다. 억새꽃은 만개하지 않았다. 억척스레 일도 살림도 잘 할 것같은 18세 처녀다. 백마를 탄 왕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손 내밀어 줄 것을 기다리는 것 같다. 국적 모를 코스모스 비슷한 .. 2005. 9. 8.
9월 건너가기 9월 건너가기 네가 그렇게 이른 낙엽이 되어 내 혼을 끌고 가버린 그날 아침에는 백지같은 안개가 무수히 내렸었다. 종일 무겁던 하루가 부빌 데 없이 떠돌다가 빼꼼이 열린 창들이 지켜보던 골목길에 오르면 어느 집에선가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따르던 숨 죽인 달빛이 비틀거리는 발걸음.. 2005. 9. 6.
흔 적 흔 적 /여름비 혼자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불 하나씩 피워 놓고 산다. 혼자 지새는 가슴에 한 가닥 미련으로 지핀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눈빛도 길을 잃고 가슴마저 기댈 곳 없는 휴지 같은 사람들 태우고 태워도 연소되지 않는 흔적 버려진 사람들은 한 덩이 숯같은 슬픔을 안고 산다. 2005/09/03.. 2005. 9. 3.
거리 3 / 백창우 > 거리 3 /백창우 그대와 내가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참 좋다. 사랑은 둘이서 한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기 바라보는 곳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더라도 우리 사랑 훼손받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그대가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를 사.. 2005. 9. 3.
거리 2 /백창우 거리 2 /백창우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너는 너를 살고 나는 나를 살아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보일 수도 있겠지 네가 쫓는 파랑새가 내 앞길엔 없고 내가 찾아내 이름 붙여준 아주 조그만 별이 네 하늘엔 없을 수도 있겠지 네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내겐 별볼일 없고 내 영혼을 사로잡는 시 한 편이 네.. 2005. 9. 2.
거리 1 /백창우 거리 1 /백창우 너는 모를거다 때때로 내 가슴에 큰 소나기 쏟아져 내 삶을 온통 적시는 것을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 꿈도 없는 긴 잠 속에 며칠이고 나를 눕히고 싶다 너는 모를거다 때때로 내 가슴에 큰 바람 몰아쳐 내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을 아무도 없는 어둠 한구석 찬벽에 등 기대 앉아 새벽이 .. 2005. 8. 31.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 * * *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 2005. 8. 29.
하얀 난 / 임혜신 하얀 난 /임혜신 편애하였다, 나는 들꽃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 덤불 덤불 피어있는 패랭이 제비꽃 싸리꽃을 여느 욕망에도 매달리지 않을 듯이 작고 터져버린 번뇌처럼 가벼운 야생의 꽃을 그리하여 그들이 있을 법한 거친 들길을 헤매었다 짐승처럼 바람처럼 그것이 욕망이며 그것이 번뇌임을 .. 2005. 8. 25.
젖무덤/정호승 젖 무 덤 /정호승 젖가슴은 사람들이 자기를 젖무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 기분이 아주 나빴다. "왜 하필이면 무덤이야....무덤은....." 젖가슴은 그날 저녁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젖가슴은 잘 익은 과일처럼 여전히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슴을 무덤으로 표현하다.. 2005. 8. 24.
이제 누구를 사랑하더라도/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 2005. 8. 23.
꽃 지는 저녁 /정호승 2005. 8. 21.
주점에서 주점에서 /여름비 바라보면 모두 안개같은 사람들 저마다 옷을 걸친 삶의 방식들이 술빛 목소리를 타고 비틀거리다 지친 불빛 아래 줄기로 오르고 무겁게 꺾어 보지만 언제나 마시는 건 빈 가슴뿐. 창 밖을 달리는 저 불빛들은 진정 갈 곳을 못 찾은 것일까. 하루의 마침표마저 찍어내지 못하는 어깨들.. 2005. 8. 20.
하늘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오광수 하늘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오광수 하늘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사는 동안 그 하늘이 캄캄해지는 슬픔이 있었어도 캄캄한 가운데서 나와 같이 울어주는 빗소리가 있었고 나보다 더 크게 울어주는 통곡이 있었고 함께 흘리는 눈물이 있어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빗물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참.. 2005. 8. 19.
이제는 흐르고 싶다 이제는 흐르고 싶다 / 성낙일 흐르는 강물처럼 저렇게 흐르고 싶었는데 언제부터 나는 고여들기 시작했을까 수초 사이를 헤치고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달리며 걸러지고 걸러져서 바닥까지 보이는 투명함으로 끝없이 흐르고 싶었는데 언제부터 나는 멈추어 선 채 발 아래 푸른 이끼만 키우고 있었을까 .. 2005. 8. 17.
강물이 흐르는 까닭은 강물이 흐르는 까닭은 /여름비 사람들은 모른다 왜 강물이 흘러가는지 지친 하루가 나래를 접고 눈물보다 맑은 이슬이 풀잎을 찾으면 귀신같이 처량한 울음으로 들썩이는 저 강을 보아라. 아이들 물장난 소리는 종이배 따라 떠내려가고 가면 벗은 교교한 달빛이 모래알처럼 부서지는 여울에 제 가슴.. 2005.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