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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문상을 다녀오느라 늦게 귀가하니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큰아들이 수시에서 탈락을 했는데 너무나 마음이 상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탈락'이라는 것을 태어나 처음으로 실감나게 경험한 것이었으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지가 보더라도 동생보다 자기가 훨씬 노력을 많이 한대. 독서실에서 똑같이 .. 2005. 10. 6.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복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 2005. 10. 5.
어디에도 없는 그대 / 이정하 어디에도 없는 그대 /이정하 그대라는 두 글자엔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그대, 라고 부르기만 해도 금세 내 눈이 젖어오는 건 아마도 우리 사랑이 기쁨이 아닌 슬픔인 탓이겠지요. 지금 내 곁에 없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리운 그대여, 이렇게 깊은 밤이면 더욱더 보고 싶어지는 그대여. 그대는아십니.. 2005. 10. 3.
내가 빠져죽고 싶었던 강, 그대 / 이정하 내가 빠져죽고 싶었던 강, 그대 /이 정하 저녁 강가에 나가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때마침 강의 수면에 노을과 함께 산이 어려 있어 그 아름다운 곳에 빠져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가끔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모양이지요. 내게 있어 그대도 그러합니다. 내가 .. 2005. 10. 1.
그대에게 묻는다/이이원 그대에게 묻는다 /이이원 인연은 어느 한 순간에 얻어지는 이름이 아님을 알기에 사하라의 모래바람 속을 밤낮으로 걸으며 몇 겁의 전 전생에 그대를 그리다 내가 차지할 모든 욕망들을 묻은 뒤 겨우 사람 몸 받아 지금껏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니 봄비 오면 싹트는 저 힘찬 생명의 언어를 눈빛에만 .. 2005. 9. 29.
가을 비 가을 비 젖은 걸음들이 어둠을 재촉하면 매무시 고치는 가로등 버려진 우산 하나 구겨진 거리에서 비에 젖어 저물어간다 한때는 누구의 하늘이었던 적이 있었지 喪服으로 검게 쓰러져 우는데 비는 내리고 2005/09/27 여름비 2005. 9. 27.
흔들리는 것들 / 나희덕 흔들리는 것들 나희덕 저 가볍게 나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어 마른 쑥풀 향기 속으로 툭 튀어오르는 메뚜기에게도 삶의 속도는 있어 코스모스 한 송이가 허리를 휘이청 하며 온몸으로 그 무게와 속도를 받아낸다 어느 해 가을인들 온통 흔들리는 것 천지 아니었으랴 바람에 불려가는 저 잎.. 2005. 9. 25.
선운사 산사음악회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를 때> 갈 때는 '송학사'와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저절로 나와 흥얼거리면서 고속도로를 신나게 140으로 달렸습니다 일찍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온통 주차장이며 거리에 차들로 넘쳤습니다. 할 수 없이 길 옆에 대놓고 들어가 보니 당연히 자리는 이미 만원이었고... 2005. 9. 25.
낯선 편지 /나희덕 낯선 편지 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 네 빛바랜 편지를 나는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건포도처럼 박힌 낯선 기호들, 그 속삭임을 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들, 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 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한들 나는 이제 눈 멀어 그 깜박임을 알아볼 수가 없.. 2005. 9. 23.
용천사 불갑사 석산화 불갑사 범종각에서 바라본 불갑산 능선 영광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영광읍을 거쳐 불갑사로 향했다. 추석이 지난 뒤끝이기도 했지만 꽃을 보기에 늦은 시기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행사장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저수지 길로 들어서니 새로 길을 내 포장하여 잘 다듬어 정비하였고 가로등은 풍력 발전.. 2005. 9. 21.
신성리에서 신성리에서 갈대 숲 방부처리된 통나무 의자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으스스하다. 수많은 인적들이 오고가며 세월로 다져진 진흙 바닥에 누군가 끊다가 그만두고 간 갈대 하나 쓰러져 운다. 그만 일어서자. 날은 지쳐 어두워지고 저녁이 가벼이 휩쓸고 지나가는데 나는 안다. 지난 바람은 뒤돌아 보지 않.. 2005. 9. 20.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 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피는 날이 있으면 어찌 꽃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 2005. 9. 18.
정동진 길은 여러 갈래지만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파도는 허옇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바위를 치고 위로 솟구치는 하얀 거품들이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모래사장까지 온통 하얗게 덮어 버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말끔하게 개었습니다. 길은 .. 2005. 9. 15.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4/이정하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4 열차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역사의 낡은 목조 계단을 내려가며 그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생애가 그렇게 삐걱대는 소리를 들었다. 취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신 술이 잠시 내 발걸음을 비틀거리게 했지만 나는 일부러 꼿꼿한 .. 2005. 9. 11.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이외수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 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 2005.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