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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 온 시

신석정이 기다린 '꽃덤불'은 언제 오려나

by 여름B 2022. 10. 22.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 본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풀에 아득히 안겨보리라.

_「꽃덤풀」전문

 

 

 

신석정 문학관은 신석정이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들어온 뒤에 지은 자택 '청구원'의 맞은 편에 있다.

부안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내변산 쪽이나 선유도가 있는 고군산군도를 찾아 새만금방파제를 달리기에 바빠 이곳을 둘러 보는 이들이 매우 적나 보다.

찾아간 그날도 전시실에 불도 밝히지 않아 어두운 곳에서 띄엄띄엄 그의 발자취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고 한 시간여 둘러보는 동안에도 아무도 찾는 이는 없었다.

한 때 자연을 노래하고 일제에 저항도 했으며 참여시를 썼던 그가 잠시 둘러썼던 사상의 멍애는 아직도 그는 온전한 시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가.

일제 통치와 6.25는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 우리의 그늘이 너무나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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