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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가족

할머니와 뱀딸기

by 여름B 2007. 3. 17.

 

     

    어느 님 방에서 뱀딸기를 보았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들판을 쏘다니면 이것을 자주 보았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뱀이 먹는 딸기라서 뱀딸기라고 불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숱하게 많은 뱀들을 만났지만 뱀이 그 딸기를 먹는 모습은 물론

    그 딸기가 있는 근처에서조차 뱀은 커녕 뱀꼬리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할머니

    고집 센 강씨가, 단발령을 거부하고 골방에서 먹을 갈아 족보 나부랑이나 쓰시던

    무능한 할아버지께 시집와 사시다가 당신보다도 억센 전주 이씨 며느리를 맞이하시면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고부 갈등을 끌어안고 사셨다.

     

    그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한 5년 전쯤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던 나에게

    자주 뱀딸기를 따 오라고 시키셨다. 나는 매일 노는 곳이 들판이나 야산인지라 어렵지 않게

    그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그 딸기를 헝겊으로 싸서

    눈에 대고 꾹 눌러 그 즙으로 눈을 씻어 내시곤 하셨다.

     

    "할머니 왜 그래?"

    "눈이 침침해서 그런다"

    "이렇게 하면 눈이 좋아져?"

    "그런단다"

     

    실제로 할머니께서 그 뱀딸기의 효험을 보셨는지는 모르겠다.

    그 즈음쯤 몸져 누우셨고 그 길로 5년 정도를 아랫목 신세를 지셨으며 그때의 뒷처리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던 누나들을 나무라며 어머님이 도맡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백내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날이 침침해져 가는 시력을 할머니께서는 손주가 따다 주는 뱀딸기에 의존하실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몌별님 방에서 뱀딸기 사진을 보니 갑자기 할머니가 생각난다.

    돌아가신지 벌써 40년쯤 되었나 보다. 

       

                                                                      2007. 03. 17.     여름비

     

     

     

                                                        흐르는 곡은 Azure Ray의 November

     

                                                         휘지님 방에서 쎄비쳐 왔다고 차마 못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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